러시아 산업계를 대표하는 알렉산드르 쇼힌 러시아산업기업연합회장이 동방경제포럼에서 '일본해' 명칭을 '동해'로 바꾸자는 논의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는 소식이 타스통신을 통해 전해졌다. 그는 일본해라는 명칭이 실제 지리적 맥락과는 거리가 있으며, 일본과의 연관성을 강조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동해'로 개정한다면 더욱 객관적이고 지리적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발언은 한국의 동해 표기 운동과 맞물려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알렉산드르 쇼힌 회장 프로필
쇼힌 회장은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학계와 정계, 그리고 산업계를 넘나들며 활약해왔다. 그는 러시아에서 대통령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요직을 경험했다고 평가받는다. 모스크바대학교 교수 시절 외무부 경제고문으로 발탁된 이후 노동부 장관, 부총리를 거쳐 국가 경제 정책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05년부터는 러시아산업기업연합회(RSPP) 회장직을 맡아왔으며, 이 기구는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해당하는 러시아 산업계의 대표적 단체다.
특히 그는 한국과의 관계에서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로 알려져 있으며, 한·러 간 경제 협력 증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러시아 내에서는 산업계와 정부를 연결하는 핵심적 가교 역할을 담당하며 기업 환경 개선과 대외 협력 강화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동방경제포럼과 대유라시아 파트너십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국제적 행사다. 쇼힌 회장은 이 자리에서 '대유라시아 파트너십' 구상을 강조하며, 러시아 극동 지역을 아시아 경제권과 연결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 지역은 최근 민간 투자 성장률에서 연방 내 선두권으로 부상하며, 중국·한국·일본·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 거점으로 각광받고 있다.
쇼힌 회장은 미얀마 부총리를 비롯한 아시아 고위 관료들과의 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으며, 이를 통해 러시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동해' 명칭 제안 역시 단순한 지리적 문제를 넘어서 러시아가 아시아 공동체 속에서 정치적·경제적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발언으로 해석된다.
국제 지명 변경과 정치적 파급력
지명의 변경은 단순한 언어적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정치와 외교 관계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쇼힌 회장의 발언은 한국의 오랜 숙원인 '동해' 표기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러시아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정치적 행보로도 읽힌다. 특히 일본해 표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기에, 이번 발언은 역사적 정의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트럼프의 멕시코만 개명 사례와 비교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멕시코만'의 명칭을 '아메리카만'으로 변경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이는 특정 국가의 정치적 의지를 반영한 지명 변경이라는 점에서 이번 러시아의 동해 제안과 유사성이 지적된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한국의 동해 표기 사례를 직접 언급하며, 특정 지명이 국제적으로 혼용되는 사례가 확산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실제로 구글맵에서는 미국 내 접속자의 경우 '아메리카만' 단독 표기로, 해외 접속자의 경우 '멕시코만·아메리카만' 병기로 표기되는 등 지역별로 상이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지명이 국제적 외교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의 평가와 국제적 시사점
경희대학교 주성재 교수는 "일방적 지명 변경은 인류가 쌓아온 지리적 전통을 무시하는 폭거"라고 비판하면서도, 이번 사례가 동해 병기 운동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특정 국가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명 문제에 직접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지명 논란은 국제사회의 중요한 갈등 요소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러시아의 제안은 단순히 일본과의 역사적 갈등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경제권 속에서 러시아가 한국과 협력하고 일본과의 균형을 조율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명칭 변경을 넘어 국제 정치의 판도 속에서 동북아시아의 외교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움직임이 될 수 있다.
결론: 동해 제안의 의미와 향후 전망
알렉산드르 쇼힌 회장의 '동해' 명칭 제안은 러시아 산업계를 대표하는 인사가 국제 포럼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개인 의견을 넘어선 무게감을 지닌다. 이 제안은 한국의 동해 병기 운동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으며, 동시에 일본과 러시아 간 외교적 긴장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으로 이 발언이 국제수로기구(IHO)나 유엔 지명 표준화 회의와 같은 국제 기구에서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명의 문제는 단순한 지도 표기의 차원을 넘어 역사, 정치, 외교, 경제를 아우르는 종합적 사안이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이번 제안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유라시아 전략' 속에서 상징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기록될 것이다.
따라서 '동해' 명칭 제안은 한국 입장에서는 국제적 여론을 형성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며, 러시아 입장에서는 아시아 경제권 내 영향력을 확장하는 외교적 카드가 될 수 있다. 향후 국제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논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